경기도 화성의 조용한 농촌 마을 제암리는 1919년 4월 15일, 참혹한 비극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만세운동이 격렬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군대에 의해 주민들이 교회에 가둬진 채 총살되고 마을 전체가 불에 타 폐허가 되었던 장소입니다.당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졌고, 화성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화성은 송산면과 장안면, 우정면, 발안장터 등지에서 일본 순사 두 명을 처단할 정도로 강력한 저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본보기 처벌의 일환으로 제암리를 선택했습니다.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은 조선인 순사보 조희창의 첩보를 토대로 마을 주민들을 교회당에 가두고, 무차별 총격 후 불을 질렀습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여성까지 희생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