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진주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도시지만, 1919년 3월 18일, 이곳은 대한독립을 외치는 거대한 물결로 뒤덮였었습니다. 서울에서 3월 1일 독립선언이 일어난 후, 불과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경남 진주에서는 전국 두 번째 규모의 대규모 만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놀랍게도 이날 시위에는 무려 연인원 3만 명이 참가하였고, 시위는 단 하루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 이어진 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심지어 기생, 걸인, 노동자까지 전 계층이 참여한 진정한 민중의 항거였습니다.진주 3·1운동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지도자 김재화를 중심으로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사립 광림학교 악대의 참여, 태극기 준비, 교섭위원 선정까지 전 과정이 조직적으로 실행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