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식민지 조선 전역을 휘감은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이 낭독한 독립선언서는 각 지역으로 빠르게 퍼졌고, 울산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울산의 만세운동은 언양, 남창, 병영 등 여러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중 언양의 3·1운동은 1919년 4월 2일, 언양장터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단순한 시민들의 자발적 항거가 아닌, 철저히 준비된 조직적인 민족운동이었습니다.특히 언양지역은 천도교 중심의 계획된 항거였으며, 상남면 거리에는 이미 울산 천도교 교구가 설립되어 민족운동의 조직 기반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서울 천도교 본부와 직접 연락을 취하였고,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 등 지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