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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옥구, 땅을 지키려 들고 일어선 농민들 – 1927년 소작쟁의의 불꽃

1920년대 말, 조선의 농촌 사회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은 조선인의 토지를 대규모로 강탈하여 일본인 지주들에게 분배하였고, 그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 농민들은 살인적인 소작료에 신음해야 했습니다.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당시 옥구군 서수면에 위치한 이엽사농장은 이러한 식민지 농업 수탈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옥구의 농민들은 더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되찾겠다는 각오로 조직을 결성했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인 지주와 이를 보호하는 일제 경찰은 그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강압적으로 탄압했습니다. 그 결과, 192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수개월간, 옥구의 농민들은 조직적인 대항을 통해 조선 농민사에 길이 남을..

조선은행을 뒤흔든 조용한 폭풍, 대구의 의열 투사 장진홍의 결의

1927년 가을의 대구는 겉으로는 평온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체제 아래 조선은행 대구지점이 폭파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테러 행위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건 한 독립운동가의 처절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경북 칠곡 출신의 장진홍입니다.장진홍은 정식 군인이었고, 서당과 학교에서 유교 철학을 공부한 유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육과 이념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고향 인동의 인명학교에서 항일 사상을 접한 그는, 이후 교사 장지필과 동지 이내성을 만나면서 독립운동가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삶은 조용히 흐르지 않았습니다. 청년 시절 만주로 넘어가 러시아 내전과 중국 독립운동 기지 활동에도 참여했고, 이후 국내로 돌아와 일제의 만행을 직접..

당진 대호지와 천의장터, 일제의 중심을 뒤흔든 4·4 만세운동

1919년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든 3·1 독립만세운동은 서울과 평양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충청남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도 강력한 저항의 불꽃을 일으켰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당진시 정미면 천의장터에서 일어난 4·4 만세운동입니다. 이 만세운동은 단순히 도시의 영향을 받은 지방 시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주도한 이들이 평범한 마을 주민이 아닌, 면사무소의 공직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4·4 만세운동의 전개 중심지는 대호지면에서 정미면 천의장터로 이어지는 시위 행렬이었습니다. 천의장터는 예부터 장이 서는 날이면 수백 명의 인파가 모이던 지역 상권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공간적 특성을 잘 파악한 주민들은 시위를 계획적으로 준비했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과 태극기,..